
<아가씨>의 원작 <핑거스미스>가 과연 어떨지 궁금했는데, 마침 전자책이 나와있길래 냉큼 질렀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각색을 정말 잘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스포일링 주의!!! <아가씨>와 <핑거스미스>의 스포일링이 있습니다]
핑거스미스의 캐릭터와 아가씨의 캐릭터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아요.
히데코=모드 릴리
숙희=수전 트린더
후지와라 백작=젠틀맨
코우즈키=크리스토퍼 릴리
보영당=랜트 스트리트
보영당주=석스비 부인
끝단이=데인티
보영당 위조범=존
사사키 부인=스타일스 부인
준코=아그네스
<아가씨>에서는, 원작의 3부를 대폭 축소하고 석스비 부인 캐릭터를 삭제했어요. 랜트 스트리트도 삭제한 것에 가깝고요. 원작은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최후에 수전과 모드가 재회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에 중점을 뒀지만, <아가씨>는 2부를 대폭 늘렸고, 특히 낭독회를 엄청나게 늘려놓았어요.
물론 원작에도 낭독회는 나오지만, '이런 게 있다' 정도로 조금 나오고 구체적인 정황은 묘사가 안 돼요. 그런데 <아가씨>에서는 낭독회를 아주 자세히 묘사하죠. 낭독회를 묘사하는 게 박찬욱의 진짜 의도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원작 핑거스미스와 비교해보면 크리스토퍼 릴리와 코우즈키, 후지와라 백작과 젠틀맨의 차이도 매우 큰데... 일단 크리스토퍼 릴리가 모드에게 가하는 신체적 학대가 <아가씨>에서는 한 장면만 나오고 다 삭제됐어요. 대신 낭독회를 통한 정서적 학대가 부각되는데, 막상 원작에서는 모드가 조금만 실수해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장면이 나오니 정서적 학대는 오히려 원작 쪽이 더 심한 듯해요.
후지와라 백작은 <아가씨>버전이 더 마음에 드는데, 원작의 젠틀맨은 돈만 밝히고 이유없이 모드를 학대하는 모습이 나와요.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듯해서 이건 박찬욱 버전이 더 좋네요. 후지와라 백작은 적당한 악당이면서도 결국 히데코에게 끌려 변하고, 끝내 자신이 파멸해버리죠. 반면에 젠틀맨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짜증스러워요.
석스비 부인은 <아가씨>에선 통째로 삭제됐는데, 모드를 아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점에서는 크리스토퍼 릴리와 같은 악역이예요(크리스토퍼는 모드를 아끼지도 않지만). 그리고 그토록 소중히 기르던 수전을, 계획이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신경도 안 쓴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고요. 이 작품에서 착한 캐릭터는 데인티 정도뿐이지만, 젠틀맨과 석스비 부인은 정말 독보적인 악역이라 <아가씨>에서 수정/삭제된 게 이해는 갑니다.
크리스토퍼 릴리는 원작에서 모드가 도망가자마자 파멸해버렸는데, 코우즈키는 후지와라와 공멸할 때까지 멀쩡한 것도 원작과 달라요. 그리고 데인티와 존의 비중이 약간 높은데, 데인티는 그래도 괜찮지만 존은 짜증만 유발하는 캐릭터라 삭제하는 게 답이었을 듯해요.
준코는 <아가씨>에서는 그저 엑스트라지만, 원작의 아그네스는 '학대당하지 않은 모드'이고 모드도 이걸 알아요. 자신이 제대로 컸다면 아그네스처럼 되었을 거란 걸 깨닫고, 틈만 나면 아그네스를 학대하죠. 이 장면에서 모드 역시 망가진 캐릭터라는 게 잘 드러나는데, 이건 <아가씨>의 히데코에서는 많이 줄어든 면이예요.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발 마사지 장면)과, 수전과 모드가 재회하는 장면을 비교하면... 이건 <아가씨>쪽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원작에선 수전이 모드를 향한 증오를 거두는 게 이해가 잘 안 되거든요. 물론 모든 사실을 안 수전이 증오를 거두는 게 타당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요. 그런데 <아가씨>에서 죽으려는 히데코를 숙희가 구원해주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죠.
전체적으로 <핑거스미스>는 <아가씨>보다 좀더 모에하면서도 이야기가 복잡하고, <아가씨>는 각색을 잘 하고 훨씬 탐미적이고 퇴폐적으로 바꿔놓은 느낌이예요. 개인적으로는 <아가씨>가 좀 더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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