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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철강 관세에 대하여 Diary Of A Madman

지금은 다른 일 하지만, 한때 철강업계에 몸담았던 터라 이걸 그냥 남의 일로 볼 수가 없네요. 아직 그때 입사동기들도 많이 업계에 남아있기도 하고요. 일단 이건 최종 판정을 봐야 합니다. 다만, 이제까지 미국이 걸던 안티덤핑(AD)과는 느낌이 다르네요.


1. 예전에도 미국발 AD는 연례행사였지만 지금처럼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세계적 이슈가 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업계에서야 이게 최대 관심사지만 이 정도로 일반적인 뉴스가 된 건 처음이예요.

2. 한 4~5년 전에 주로 AD 맞던 건 미국향 API 강관 제품입니다. 이건 American Petroleum Institute(미국석유협회)에서 제정한 API 규격에 맞게 만든 제품들인데 시추관, 유정관, 송유관, 해양구조용 강관 등입니다. 워낙 까다롭고 엄격한 규격이라 저걸 만든다는 게 곧 기술력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고부가가치 제품이예요.

미국 셰일산업 성장 덕분에 한국산 API 강관이 미국으로 많이 수출됐고 강관 제조사들의 주력 품목이 되다보니 AD도 자주 맞았는데, 처음에는 여러 국가, 여러 기업, 여러 품목을 묶어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제소한 후 실제 판정에서는 몇몇 기업이나 품목만 남기고 세율도 확 떨어뜨리는 식입니다. 물론 관세 10%면 기업 입장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이 되니, AD 소식만 나오면 회사 전체에 비상이 걸리고요. 그리고 판정 때 항상 봐주는 것도 아니라서 잘못 걸리면... 관세 폭탄을 쳐맞습니다=_=


3. 한 3년 전까지는 인도와 동남아가 많이 맞았고(심하면 100% 이상) 한국은 세게 맞지 않았는데 재작년부터 한국도 관세 폭탄을 맞았어요. 이땐 제가 업계를 떠나서 배경을 잘 모르겠는데, 강관이 아니라 냉연/아연도강판에 관세를 많이 부과했더군요. 이땐 미국과 사우디가 벌인 유가 치킨 게임 때문에 셰일산업이 침체되어 한국산 강관 수출량도 떨어진 상태였고요.

4.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지만 철강도 원산지 따지는 게 애매합니다. 현실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중국산 열연을 베트남에서 냉연하고 태국에서 도금해서 한국에서 도장한 제품은 과연 어느 나라 제품일까요? (최종 제품에는 한국산으로 찍힙니다) 다만, 한국의 중국 철강 수입량이 연간 1400만톤이라는데 이건 많은 양이 아닙니다(당장 포스코 1년 생산량이 3300만 톤이 넘습니다).

중국이 철강 구조조정을 빡세게 하긴 하지만, 남아도는 철강이 한 3억 톤쯤 되다보니 이걸 어떻게든 수출하려고 노력중입니다. 한국은 이걸 많이 수입해서 원료로 쓰고 있고요. 품질이 좀 널뛰는 게 문제지만 잘 나온 건 한국산보다 좋을 때도 많아요. 다만, 이번에 특별하게 중국을 겨냥해서 본격적인 제재를 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전부 건드린 다음에 하는 거 봐서 최종적으로 손봐줄 놈 걸러낸다는 느낌이예요. 트황상은 무역과 관련해서 전세계를 때리는데, 일본은 5대 맞을 걸 아베가 1대로 줄여서 맞고 한국은 3대 맞을 걸 달님이 10대로 늘려서 맞는 듯합니다. 미국향 철강규제를 이렇게 요란하게, 대대적으로 한 적이 없는데다 안보 문제까지 들고나온 걸 보면, 말 안 듣는 놈들은 작정하고 손봐주겠다는 뜻으로 보여요.


5. 남아있는 제 동기들이 정말 걱정됩니다ㅠㅠㅠ

덧글

  • 디스커스 2018/02/23 00:16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원산지가 대개 부가가치 기준으로 찍히기에 그런 현상이 발생하곤 하죠.ㅎㅎ. 관련업계에 계셨다고 하시니, 괜찮으시다면 한가지 여쭙고 싶은데, 이번 제재가 중국 철강업계를 궤멸시키려 드는 것이라는게 당췌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전 중국 철강 수출길이 다 끊겨도 내수로만도 세계1,2위를 다투는 수위권의 조강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들거든요.

    * 중국이 남는 철강 처리에 고심한다곤 들었습니다만, 그게 3억톤일줄이야...;;; 대륙의 클라스란;;
  • Arcturus 2018/02/23 00:38 #

    1. 중국 철강업계가 공산당 소속의 단일 업체가 하는 거라면 또 모를까... 제재로 중국 철강업계를 때려잡는 건 불가능합니다. 포스코보다도 규모가 큰 바오산부터 시작해서 수도강철 사강 우한 등등 강력한 기업이 많습니다. 품질이 형편없다면 또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품의 신뢰성이 좀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한 주문번호로 출하된 제품인데 품질이 심하게 널뛴다거나, 분명히 JIS 규격을 충족하는데도(중국은 주로 JIS를 따름) 미묘하게 안 좋다거나 합니다. 도금 같은 경우, 제품 검사증명서와 실제 도금부착량이 따로 노는 경우도 많고요.

    이건 연속생산제품의 근본적인 한계인데, 코일 하나가 보통 수천m다 보니 전수검사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거든요. 위에 쓴, 규격 충족하는데 안 좋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2000m짜리 코일을 원료로 투입해보니 좌우로 수십mm씩 왔다갔다하는 S자 강판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이거 %로 따지면 0.1% 오차도 안 돼요.

    2. 다만 이게 중국 철강업계에 타격을 주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불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몇 년 전 한국 철강업계 불경기에, 포스코가 증산기술만 있고 감산기술이 없어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고로에 쇳물을 108%까지 넣고 끓이는 기술은 있는데 100% 이하로 끓이는 기술은 없었죠. 그런데 당시에 일본은 96%까지 줄여서 끓이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어요. 한국보다 불황이 훨씬 먼저 와서 가능한 거였죠. 중국도 이런 걸 몸으로 때워가며 배워야 하는데, 미국이 이걸 강제하면 당분간 개고생할 수는 있습니다.

    3. 제재로 중국 철강업계를 때려잡는 게 어려운 것과 비슷하게, 중국정부의 구조조정으로도 과잉생산을 막는 게 쉽지 않습니다. 물론 계속 과잉생산하다가는 자기들도 죽을 테니 최대한 조정은 하고 있고요. 그리고 중국 철강 내수시장은 엄청난 규모긴 하지만, 건자재 위주로 가다보면 저부가가치 위주의 정체된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용 강판은 고부가가치긴 해도 규모에 한계가 있고요.
  • 디스커스 2018/02/23 00:51 #

    1. 중국철강업계에 필요한건 식스시그마인듯...ㅎㅎ.

    2. 타격은 가능하겠지만, 안그래도 과잉생산으로 골아파 철강구조조정의 선두에 나선 곳이 중국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고로당 산출량을 줄일 수 없다면 기업을 하나 더 폐업시키면 되지! 가 가능한 곳이 중국이다보니...

    3. 그 건자재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여러모로 미묘한... 고부가가치시장에의 안정적인 진입, 결국 그것이 국민소득의 도약인 것인데, 그게 순탄한 경우는 원체 드물어서요...

    * 댓글 감사합니다~
  • Arcturus 2018/02/23 10:12 #

    1. 6시그마는 요즘 끝물이라…^^;;; 그리고 저런 차이가 규격을 벗어나는 게 아닐 때가 있어서 더 골치아픕니다(…) 다만, 규격에 규정된 검사주기대로 검사는 하되 그 사이에 원가절감을 위해 도금량을 줄인다던가 열처리 온도를 내린다던가 하는 수작은 많이 벌어집니다. 예전에 중국업체 여러 군데에서 들어온 아연도강판 도금량 테스트해봤는데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양심적으로 절반은 도금해놔야지ㅠㅠ 도금량이 반도 안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물론 잘하는 업체는 굉장히 잘하지만 저런 게 종합되면 업계의 평판이 되죠.

    문제는 저런 조작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도금팀이야 당연히 원가절감 압박을 받으니 생산하다 슬그머니 원가절감(…)을 하죠. 그러면 그거 받은 도장강판팀은 작업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도금팀을 씹습니다. 도금팀도 마찬가지로 직전 공정인 냉연팀에서 수작 부린 걸 깨닫고 냉연팀을 씹습니다(…) 이런 건 사실 어디서나 다 벌어집니다. 고베철강 조작 사건도 이런 요인이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이쪽은 회사 차원에서 저런 것 같지만요). 이런 게 덜한 기업이나 국가가 끝내 살아남는 거고요.

    일본의 경우는 아예 반대로, 품질향상에 돈 쓰지 말고 차라리 적당한 걸 적당히 싸게 팔자!란 마인드로 성공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고도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2. 말씀하신대로 정부 주도의 폐업도 가능합니다만 저항이 만만찮을겁니다. 중국 철강 과잉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아직 해결이 안 된 걸 보면, 이쪽도 정부 개입이 강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몸으로 때우면서 구조조정하는 느낌입니다.

    3. 한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은 막강합니다. 자동차강판이나 가전제품용 강판, API 강관 등 포트폴리오나 기술이나 품질 모두 최고 수준입니다. 포스코는 티타늄도 압연해요 ㄷㄷㄷ

    건자재는 아무래도 저부가가치 시장이다보니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을 많이 도입하는 거고요. 그런데 이쪽도 소방법을 이용한 수입장벽을 만들어놨습니다(…) 샌드위치판넬용 강판을 두께 0.5mm 이상으로 규정을 신설했는데 이 두께 이상이면 한국산이 경쟁력이 있거든요^^;;;

    4. 저는 한국 철강산업에 남은 건 경기변동에 대한 유연한 대응, 그리고 비용절감이라고 봅니다만 노동경직성 때문에 쉽지 않을 듯합니다;;;
  • 2018/02/23 02: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23 10: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25 17: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2/25 21: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피그말리온 2018/02/23 02:22 #

    그 말이 적절하군요. 3대 맞을거 10대 맞고 있다는...
  • Arcturus 2018/02/23 10:35 #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사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맞을 짓을 더 하니… 그런데 중국에는 왜 그렇게 저자세로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대의 예인지(…)
  • MoGo 2018/02/23 11:39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기가 상승세이고 거기에 원유가 65-75 사이로 안정적이 되면 철강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이 조치는 오래 못 간다는 제 의견에 지인분은 현재 미국이 공장을 안(못) 돌려서 말이지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상승되어 자국내 공급으로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고 트럼프가 가장 목표하는 바는 자국내 철강산업의 활성화이므로 단기에 조치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시던데 궁금한 건, 미국의 철강산업 쪽이 공급을 받쳐주기에는 생산설비 상황은 어떤가요? 제가 그 바닥 사람이 아니다보니 단순히 경쟁에 밀린 건지 아예 공급을 받쳐주기에 모자란 건지 알 수가 없는데 만약 그 분 말처럼 그렇다고 한다면 오래 못간다는 생각은 접어야할까요?
  • Arcturus 2018/02/23 14:51 #

    이건 사실 딱 잘라서 길게 간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미국 수요는 한 1억 톤, 생산량은 8천만톤 정도 되는데(정작 철강수입량은 3500만톤 정도) 철강산업 가동률이 75%정도라 이걸 끌어올리면 차이를 메꿀 수는 있어요. 이걸 보면 규제가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애초에 미국발 AD는 연례행사였고요.

    그런데 수요증가 문제도 있고 가격경쟁력 문제도 있는데다 트럼프가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서(…) 좀 규제하다가 슬그머니 풀어주는 식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 규제도 아직 최종 판정도 안 나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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