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살려면 민주당보다 앞서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그 비전을 주로 누구에게 보여주고,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민주당의 대승과 기고만장한 강성 지지층들을 보면서 곧바로 떠오른 건 <힐빌리의 노래>였다. 나는 이 책을 한참 전에 읽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의 의미와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했다. 미국민주당은 힐빌리로 상징되는 서민층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PC질에 몰두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한 건 트럼프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일자리를 파괴하고 출산률을 떨어뜨리며 소득격차를 확대하는 동안, 붕가개로 표현되는 한국판 힐빌리는 증가 일로다. 새로운 대안정당이든 거듭난 보수든, 민주당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다수 서민을 파악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이는 한국이 살아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민주당식 복지와 공정의 실체를 폭로해야만 한다. 민주당의 포퓰리즘식 현금살포는 그저 붕가개들이 진창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단속하는 수단일 뿐이다. 보수의 복지는 이래서는 안 된다. 서민층이 도전할 수 있게,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게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까는 방향으로 복지를 설계하고 홍보해야 한다.
공정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공정이 위선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반면 보수는 공정에 대해 뚜렷한 비전이 잘 안 보인다. 기회의 평등은 슬로건으로서 별로 좋지 않다. 최소한 '조국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계층상승까지는 안 가더라도 '진창 탈출은 가능하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와 노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작은 정부와 규제철폐, 노동유연화는 한국에서 너무 인기가 없다. 이는 원칙으로서 갖고있어야 하지만 표현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과 패키지로 묶어야만 한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접근은 기존의 조직노동(노조)과는 완전히 달라야만 한다. 서민층은 저런 식으로 조직화되지도 않을 뿐더러, 만인 프리랜서 시대에 노조가 활성화되지도 않는다. 특히, 한국의 대형노조는 노동귀족으로서 이미 온갖 비판을 듣고 있다. 또한 서민 노동자들의 일터와 직종은 너무나도 다양해서, 대형 제조업 노동계급과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보수는, '파편화된 노동' 같은 개념을 만들어내고 발견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 역시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파편화된 서민 노동계층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보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외교나 안보, 북한에 대해서도, 뚜렷한 원칙과 부드러운 태도가 중요하다. 특히나 반중감정의 폭발 같은 자폭은 하면 안 된다. 민주당의 정신나간 반일행위와 이게 뭐가 다른가?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과 친선을 유지한다는 원칙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걸 그동안 안한 것도 아니다. 또한 민주당이 망가뜨린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에 공들이는 것만으로도, 보수는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 될 수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비핵화 우선, 한국의 재래식 전력 강화 및 한미동맹 강화를 기반으로, 북한의 태도가 변한다면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이 지금처럼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면, 한국은 한국이 할 수 있는 옵션(재래식 전력 강화, 한미연합훈련 확대, 대북전단 및 확성기, 자체 MD능력 강화, MD가입 등)을 사안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북한에게 망언을 들으며 끌려다니는 협상은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민주당의 통치능력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수가 금방 부활할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보수의 부활과 새로운 대안정당의 등장을 바란다. 통치능력도 없고, 사회의 발전에 관심없는 현 정부가 오래가면 망가지는 건 한국사회이기 때문이다.
덧글
배급를 받으면서 철학자 사색에 빠지는 해외여행과(이런 표현 자주 쓰네.) 방구석 씹덕질을 할 수 있다고 엄청난 착각을 하는건 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