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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Abyss Of The V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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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아 - 내가 애니메이션에 바라는 것 음악과 영상

<나타지마동강세> 마지막 쿠키에 나오길래 후속작인 줄 알았던 <강자아>입니다. 봉신연의 기반이란 걸 빼면 아무 상관도 없고 캐릭터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다 다른데... 강자아 쿠키에 나타지마동강세가 나오는 걸 보면 뭘 연결시키려고 하는 듯하긴 해요. 그런데 두 작품이 워낙 크게 달라서, 그게 가능할까 싶네요.

저는 처음엔 이게 나타지마동강세 후속작인 줄 알고 별 생각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도입부부터 심상찮더니 이내 엄청난 무게감을 갖고 전개되는 걸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반쯤 본 상태에서 깨달았죠.

이 작품은 그토록 제가 찾아헤매던 작품입니다.

저는 영화에서 '어떻게 저런 장면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은 임팩트를 주는 장면이 나오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 시각적 충격을 주는 <소울>이나, 세계관 구성이 놀라운 <인피니티 워>에 아주 후한 점수를 줬죠.

애니메이션에는 더더욱 이런 걸 바랍니다. 실사영화는 실사이기에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애니메이션만의 상상력과 연출, 표현, 액션을 바라죠.

그런 면에서 제가 최고로 꼽는 작품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입니다. 이건 말 그대로 막나가는 작품이죠. 비슷한 맥락에서 Z건담도 좋아하고요. 완성도로 치면 이보다 뛰어난 작품이 많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실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애니는 극히 드뭅니다. 20세기엔 일본 애니가 이런 경향이 강했습니다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일본 애니는 가능성을 잃고 몰락해 미소녀물만 찍어내고 있죠. EOE 만든 안노 본인은 신화가 된 소년으로 남아 중2병 노인이 됐고요(저는 이런 측면에서 안노가 일본 애니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미국 애니는 더 골치아픕니다. 디즈니-픽사의 독주가 시작되면서 다른 제작사들은 짝퉁이나 찍어내는 수준으로 퇴화하고 있고, 디즈니 자신은 실사를 아득히 뛰어넘을 기술력과 자금, 표현능력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스스로 '아동용'이라는 한계에 갇혀 한 손을 묶은 채 애니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겨울왕국, 주토피아, 소울 정도가 여기서 좀 벗어난 작품이고 이 작품들은 비주얼이나 구성에서 상당한 충격을 주지만, 디즈니답게 얌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애니메이터들이 제멋대로 만드는 작품 같은 건 나올 수가 없어요. 엔칸토에서 애니메이터들이 살짝 막나가려고 했지만 그러려다 알아서 자제한 티가 너무 강하게 났고요.


그런데 제가 EOE를 본 후 무려 22년만에, 제 기대치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면서 완성도마저 매우 높은 작품이 나타났습니다. 세계관, 구성, 캐릭터, 액션, 그래픽, 사운드 등등 모든 게 완벽합니다. 게다가 EOE는 주제의식 같은 건 없었습니다만 강자아는 주제의식(종교로부터의 해방 내지는 인간해방)마저 거대해요.

실사라면 아마 불가능했을 강렬한 액션, 미국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설정과 캐릭터와 표현(특히 피칠갑 액션), 압도적이다 못해 막나가는 비주얼이 관객을 한도 끝도 없이 몰아붙입니다. 그러다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오른 영화를 강자아가 하늘계단을 부수면서 완벽하게 마무리하죠. 

결말 이후엔 'ㅅㅂ 지금 내가 도대체 뭘 본거지???'라는 감탄만 남습니다. 중국 애니가 이정도였나... 하는 감탄이 아니라, 그냥 제가 본 애니 중에 이게 최고네요. 이런 작품을 과연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그래도 이런 작품을 또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반씩 남고요.

그리고 이런 작품을 기대해볼 수 있는 업계가 하필 중국이란 게 문제입니다. 디즈니가 아동용과 PC라는 족쇄를 차고 있긴 합니다만 중국은 중국공산당이라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죠. 그래서 과연 이런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지 걱정되는 거고요(뭐 사실 강자아는 이런 제약이 없어도 또 나올 수 있을까 싶긴 합니다만).


이런 측면에서 결국 작품의 수준은 관객(내지는 사회)이 결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즈니 애니는 대부분 어린이들이 소비하니, 그 엄청난 기술력으로도 성인취향 애니가 안 나오죠. 일본 애니는 중2병 오타쿠들이나 소비하는 마이너가 돼버렸고요. 제가 위에서 안노를 깠습니다만 사실 안노는 고객에게 맞춰준 것에 불과할 뿐일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작품이 중국에서 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적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다른 나라에서라도 이만한 게 좀 나와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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